2016년 9월 11일 일요일
민박
- 이상국
울산바위 꼭대기에는
별들의 집이 있다
어느날
집 떠나
해 지고 어두우면
그곳에 가 자고 싶다
그러나, 세석 대피소에서는 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매트가 없어서 담요 한 장만 빌렸는데, 바닥은 딱딱하고 주변은 시끄러웠다. 산악회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이 많았다. 토요일 밤이라서 더 그렇겠지.
나는 무릎도 아프고 너무 피곤해서 8시부터 누워버렸고, 10시쯤 숙소의 불을 모두 껐는데, 깊이 잠이 들지를 않았다. 내내 모든 소리를 다 들으며 비몽사몽으로 누워 있었다. 그나마 내가 배정받은 11번 자리는 10번자리가 기둥때문에 비어있어서(머리맡에 기둥이 있는데 무슨 마음으로 자리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한쪽은 편안했다. 대학 mt 이후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눈을 붙인 것이 처음인 것 같다. 연하천대피소 사람들에 비해서는 모두 조용한 편이었고, 옆사람이 코를 고는 것도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다. 코고는 소리가 차라리 연하천 대피소의 불규칙적인 나무삐걱거림 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왠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피곤해서 생각도 하나도 들지 않고, 그냥 머리가 멍했다.
새벽 2시 30분쯤부터 사람들이 벌써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마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가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천왕봉 일출을 볼 계획이 없었지만 잠도 오지 않고 무릎도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해서 그냥 일어났다. 주섬주섬 배낭을 다시 싸고, 아래 샘의 차가운 물로 세수와 양치를 했다. 새벽엔 약간 쌀쌀했지만, 차가운 물로 얼굴과 눈을 닦아내니 멍한 머리 속까지 깨끗이 씻기는 기분이다. 벌써 머리를 감지 않은지 3일이 넘었으니 머리가 갑갑해질 때도 되었는데, 신기하게 거북하지 않았다. 땀냄새도 그렇고. 나 혼자 있는 산이라면 괜찮아도, 다른 사람을 만날 때 혹시라도 안좋은 냄새를 풍길까봐 너무 걱정했는데,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괜찮았다. 속옷은 매일 갈아입었지만, 겉옷은 냄새가 안나서 신기했다. 새로 물을 뜨고, 어제 사놓은 초코파이를 비상 간식으로 보조가방에 챙기고, 배낭을 메고 장터목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새벽 3시 30분.
난 원래 새벽에 걸을 계획이 전혀 없었다. 손전등이 있었지만, 화장실을 가거나 샘터에 가거나 아니면 불꺼진 숙소에서 물건이나 찾으려는 용도였지 산길을 걸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난 자전거 헤드라이트를 뽑아들고 왔던 거였다. 배터리 4개가 들어가는 작은 손전등. 원래는 꽤 밝은데, 떠나기 전날 밤 램프를 켜보니 그다지 밝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건전지를 사러 나가기도 귀찮고 해서 집에 마침 있던 새 배터리 2개만 갈아끼워서 가져왔다. 그래서인가 불빛은 신통치 않았지만 그래도 새벽에 세수를 하러 가거나 할 때 길을 비추는 용도로는 충분했다.
그런데, 산길은 달랐다. 정말로 칠흙같은 어둠. 차라리 별이 있는 하늘이 더 밝게 느껴질 정도로 숲길은 어두웠다. 내 자전거 헤드라이트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게다가 어제 잠깐 내린 비로 길은 많이도 미끄러웠다. 한 5분 걸었는데, 혼자서 더 이상은 무서워서 갈 수가 없었다. 산장의 불빛도 보이지 않으니 너무 막막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난 천왕봉에 뜨는 해를 보려는 게 목적이 아니었고, 잠도 안오고 해서 걸으려고 나왔던 것이다. 그러니 두려움을 무릅쓰고 갈 정도로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뒤돌아 대피소 쪽으로 걸어가는데 몇 발자국 지나지 않아 앞쪽에 움직이는 불빛이 보였다.
짧은 순간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 대피소를 가도 잠을 자지는 못할 것이고 할 일도 없는데다가 일찍 출발하면 집에 돌아갈 때 교통 체증없이 버스를 타고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물어보자'
상대의 불빛이 너무 강해서 그 쪽의 얼굴은 보지 못했는데, 불빛은 세 남자였다. 장터목 방향으로 가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꾹 누르고 동행해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천천히 가는데 괜찮다면 따라와도 된다고 했다. 나에게는 차라리 잘된 일. 참...되돌아 생각하면 별 것 아닌데, 그때는 정말 기뻤다.
그래서 밝은 헤드랜턴을 머리에 착용한 세 사람의 뒤를 따라 촛대봉 쪽으로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혼자 갈 때는 무서운 길이었는데, 사람들과 함께 가니까 큰 위안이 되고 불안감이 사라졌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최대한 없는 듯 폐 안끼치고 가려고 조용히 따라가는데, 세 사람중 제일 뒤에 가던 사람이 나보고 자기 앞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했다. 평소의 나같았으면 사양했을텐데, 거절 안하고 바로 사이에 꼈다. 왜냐면 내 손전등이 워낙 흐릿해서 길이 잘 안보여서였다. 중간에 끼니까 뒷사람의 불빛과 앞사람의 불빛만으로도 걷기에 큰 도움이 됐다.
뒷사람은 내가 스틱없이 가는 것에 놀라면서 내게 자기 스틱 하나를 줬다. 처음엔 사양했는데, 너무 사양하면 안될 것 같아 받았다. 그런데 이쯤에서부터 뒷사람에게 고마워서 감동받는 일이 있었다. 바위 투성이인 컴컴한 산길을 가면서 자기 스틱 하나 빌려주는 마음도 고마운데, 내가 한 손에 손전등을 들고가는 것을 보고는 손전등을 넣고 가라고 했다. 어차피 자기가 뒤에서 좀 편하게 비춰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나 별볼일 없는 불빛이어도 손전등이 없으니 내 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다시 꺼내야 하긴 했지만. 한 손엔 스틱, 다른 한 손엔 손전등을 들고가는 생판 모르는 사람의 불편함을 헤아려 준 것이 고마웠다. 그리고 뒤에서 내가 배낭을 멘 모습을 봤는지, 촛대봉에서 쉴 때 배낭을 제대로 세팅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난 배낭이 몸에 붙는 게 싫어서 항상 좀 헐렁하게 하고 다니는데, 그 사람 말로는 배낭은 허리에 딱 붙게 고정을 해줘야 한단다. 그래서 한참을 허리끈, 어깨끈, 등을 조정해서 몸에 붙게 만들었더니 한결 편했다. 이걸 난생 처음 알게되다니! 알려준 뒷 사람에게 너무 고마웠다.
세 사람은 내가 직접적으로 묻진 않았지만 한 사람은 가이드인것 같고, 두 사람은 동료인 느낌이었다. 나처럼 지리산 종주를 하고 있고, 천왕봉으로 가고 있는 중. 세 사람의 중간에 껴서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 어둠속에서 그들의 불빛에 의지해 걷는데, 이상하게 든든하고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생전 처음 만난데다가 불빛때문에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목소리만 아는 세 사람에게 우연치 않게 받게 된 안전한 기분이 없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순간들이 고맙고, 행복했다. 아마 그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나는 언제 행복했을까?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할 때 행복했고, 도움이 되는 좋은 사람이 될 때 행복했다. 도움을 주는 일은 행복했으나 도움을 받는 일은 참 어려웠다. 물론 나는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내가 필요도 없는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내게 뭔가를 요구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다지 친하지 않거나 신뢰가 쌓이지 않은 관계에서 도움을 받는 건 정말 두렵고 싫은 일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내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힌 사람도 내게 이유없는 친절을 베풀었었다. 그 사람은 내가 받지 않는다고 화를 내기도 했는데...나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이 주는 것들이 불편했다. 왜 불편했지? 그건 그가 주는 것들이 내가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받는 주제에 뭘 골라서 받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선물이나 도움은 작은 것이라도 상대를 사려깊게 관찰하고 그가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진짜 아닐까. 그 사람은 내가 뭐가 필요한 지 제대로 관찰은 못한 것 같다. 아니면 알았지만 주고 싶지는 않았는지도...하긴 나도 제대로 표현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상황이 너무 어지러웠고 복잡했다. 어쨌든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받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원한다고 말한 것은 받지 못했다.
지리산에서 마지막 날 예기치 않게, 원한다고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들을 선물로 받은 기분이었다. 여러 번 지리산 종주를 했었는 듯한 선두의 가이드는 원래 세석에서 장터목까지의 트래킹 길이 정말 아름다운데 어두울 때 와서 하나도 못 보게 되는 것이 아쉽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다음에 낮에 또 세석까지 올라 가면 그만인 길이다. 새벽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든든하게 걸을 수 있는 지금이 나는 아무래도 제일 행복하고 좋았다.

장터목에 도착할 즈음하여 여명이 터오기 시작했다. 이젠 손전등이 없어도 되는 시간. 취사장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세 사람과 작별을 했다. 내가 성격이 좀더 살가웠으면 느꼈던 만큼 고마움을 표현했을텐데,..말은 잘 못하고 마음만 가득 담아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세 사람이 복받았으면 좋겠다. 장터목에서 천왕봉쪽으로 오르자 해가 벌써 떠오르기 시작했다. 천왕봉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거의 암벽타듯이 돌을 잡고 올라가다보니 천왕봉이었다.
여기가 지리산 천왕봉이구나! 말로만 듣던. 여기에 오려고 3일을 꼬박 아픈 무릎을 끌고 걸어왔다. 살짝 눈물이 나올 것도 같았는데, 천왕봉에서 보이는 산들과 구름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흠뻑 땀에 젖은 열오른 머리와 몸을 식쳐주는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커다란 지리산을 봤다.
반야봉아 안녕, 노고단아 안녕, 구름아 안녕, 모두 좋은 아침을 맞았구나.
난 산 아래서 삶이 불완전하게만 느껴져서,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징징대고 있었는데, 여기와서 보니까 왜 그랬다 싶다. 그래서 산이 이렇게 큰가.

남들 다 찍는 인증샷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찍고 엄마, 친구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에게 보냈다. 사장님은 아무 생각없이 했겠지만, 기어서라도 올라가보라는 말에 오기로 오길 잘했다. 하면.. 정말 된다.
중산리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좀 짧은 칼바위 방향으로 내려왔다. 천왕봉에 올라갔다와서 마음이 풀려서 그런건지, 빗물에 젖은 돌이 미끄러워선지는 알 수 없지만 최대한 천천히 내려왔는데도 여러 번 길에서 넘어졌다. 그래서 산에서 내려와 살펴보니 양쪽 무릎이 바위에 긁혀 다 깨지고 왼쪽 손바닥에도 멍이 들었다. 그래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중산리 내려와서 마지막으로 찬물에 세수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났다. 왜 그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슬픈 건 아니었는데.
중산리 버스정류장까지는 무릎도 아프고 해서 택시를 타고 내려왔고, 거기서 원지행 버스를 타고 원지로 왔다. 중간에 버스에서 이상한 남자를 하나봤다. 그 사람은 계속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는데, 그 눈빛이 이상했다. 호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뭔가 독심술같은걸 하려는 듯한 눈빛? 내릴 때도 계속 나를 쳐다봐서 자는 척 했다. 그 다음부터는 계속 자면서 집에 왔다. 원지 시외버스 정류장에 모아온 쓰레기를 버리고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버스에서는 죽은 듯이 잠만 잤다. 구례갈 때도 그랬는데, 이번엔 버스에서 자는 잠이 최고로 깊고 편안했다.
블랙홀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떠난 길. 지리산에서 다 풀고 집에 왔다.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인디언 부족의 성인식이나 그런 것처럼, 지리산을 혼자 종주했다고 해서 내가 인격적으로 성장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가벼워져서 왔다.
모두는 행복해지길 원하고, 그 행복이 항상 같은 방향일 수는 없기에 상처도 주고, 상처도 입히지만 나는 나를 잘 보살피면 될 것이다. 내 무릎이 그래줬듯. 잘 쉬고 나면, 열심히 살고나면 알아서 잘 치료될 것이다.
지리산이 그렇게 알려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