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서 구례구까지는 참 멀었다.

무궁화호는 천천히 남쪽으로 갔다. 

마침 그날은 황사예보가 있어서 세상이 안개낀듯 뿌옇긴 했지만 멍하니 창밖을 보는 것 만으로도 좋았다.

얼마나 앉아 있었나. 엉덩이가 슬슬 아파질 때쯤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그날 걸으려던건 오미-방광 구간이었다. 첫번째 이유는 거기에 숙소가 있어서. 

원래 가려던 숙소는 휴일이라서 문을 안연다고 했고 그래서 예약한 숙소가 화엄사밑에 있었다. 

그러니까 걷다가 버스를 타거나 그쪽으로 걸어가다가 숙소에서 자면 되겠구나 라고 계획을 했던거다.

그날 구례구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놓고 바로 나와서 하루종일 걸었다.


역시나 걷는 것은 좋았다.

나에게 욕을 한 아저씨도, 어지러운 서울의 찻길도

비참하게 느껴지는 내 자신도,

최선을 다하는데도 암담하게만 느껴지는 내 미래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남들에게 겉으로 웃어넘기는 내 껍데기도

쓸데없는 그런 모든 자기 연민들은 머리를 떠나 

텅빈 머리로 한발 한발. 사람 없는 황사 속을 걸었다.


숙소에 들어왔을 때는 발바닥이 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간단히 씻고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그동안 제대로 자지 못한 잠을 다 자려는 듯 그날 밤엔 꿈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이 퉁퉁 부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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