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1일 일요일

민박 

       - 이상국 


울산바위 꼭대기에는 
별들의 집이 있다 

어느날 
집 떠나 
해 지고 어두우면 

그곳에 가 자고 싶다 





그러나, 세석 대피소에서는 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매트가 없어서 담요 한 장만 빌렸는데, 바닥은 딱딱하고 주변은 시끄러웠다. 산악회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이 많았다. 토요일 밤이라서 더 그렇겠지.

나는 무릎도 아프고 너무 피곤해서 8시부터 누워버렸고, 10시쯤 숙소의 불을 모두 껐는데, 깊이 잠이 들지를 않았다. 내내 모든 소리를 다 들으며 비몽사몽으로 누워 있었다. 그나마 내가 배정받은 11번 자리는 10번자리가 기둥때문에 비어있어서(머리맡에 기둥이 있는데 무슨 마음으로 자리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한쪽은 편안했다. 대학 mt 이후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눈을 붙인 것이 처음인 것 같다. 연하천대피소 사람들에 비해서는 모두 조용한 편이었고, 옆사람이 코를 고는 것도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다. 코고는 소리가 차라리 연하천 대피소의 불규칙적인 나무삐걱거림 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왠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피곤해서 생각도 하나도 들지 않고, 그냥 머리가 멍했다. 

새벽 2시 30분쯤부터 사람들이 벌써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마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가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천왕봉 일출을 볼 계획이 없었지만 잠도 오지 않고 무릎도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해서 그냥 일어났다. 주섬주섬 배낭을 다시 싸고, 아래 샘의 차가운 물로 세수와 양치를 했다. 새벽엔 약간 쌀쌀했지만, 차가운 물로 얼굴과 눈을 닦아내니 멍한 머리 속까지 깨끗이 씻기는 기분이다. 벌써 머리를 감지 않은지 3일이 넘었으니 머리가 갑갑해질 때도 되었는데, 신기하게 거북하지 않았다. 땀냄새도 그렇고. 나 혼자 있는 산이라면 괜찮아도, 다른 사람을 만날 때 혹시라도 안좋은 냄새를 풍길까봐 너무 걱정했는데,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괜찮았다. 속옷은 매일 갈아입었지만, 겉옷은 냄새가 안나서 신기했다. 새로 물을 뜨고, 어제 사놓은 초코파이를 비상 간식으로 보조가방에 챙기고, 배낭을 메고 장터목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새벽 3시 30분.

난 원래 새벽에 걸을 계획이 전혀 없었다. 손전등이 있었지만, 화장실을 가거나 샘터에 가거나 아니면 불꺼진 숙소에서 물건이나 찾으려는 용도였지 산길을 걸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난 자전거 헤드라이트를 뽑아들고 왔던 거였다. 배터리 4개가 들어가는 작은 손전등. 원래는 꽤 밝은데, 떠나기 전날 밤 램프를 켜보니 그다지 밝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건전지를 사러 나가기도 귀찮고 해서 집에 마침 있던 새 배터리 2개만 갈아끼워서 가져왔다. 그래서인가 불빛은 신통치 않았지만 그래도 새벽에 세수를 하러 가거나 할 때 길을 비추는 용도로는 충분했다. 

그런데, 산길은 달랐다. 정말로 칠흙같은 어둠. 차라리 별이 있는 하늘이 더 밝게 느껴질 정도로 숲길은 어두웠다. 내 자전거 헤드라이트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게다가 어제 잠깐 내린 비로 길은 많이도 미끄러웠다. 한 5분 걸었는데, 혼자서 더 이상은 무서워서 갈 수가 없었다. 산장의 불빛도 보이지 않으니 너무 막막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난 천왕봉에 뜨는 해를 보려는 게 목적이 아니었고, 잠도 안오고 해서 걸으려고 나왔던 것이다. 그러니 두려움을 무릅쓰고 갈 정도로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뒤돌아 대피소 쪽으로 걸어가는데 몇 발자국 지나지 않아 앞쪽에 움직이는 불빛이 보였다. 

짧은 순간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 대피소를 가도 잠을 자지는 못할 것이고 할 일도 없는데다가 일찍 출발하면 집에 돌아갈 때 교통 체증없이 버스를 타고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물어보자'

상대의 불빛이 너무 강해서 그 쪽의 얼굴은 보지 못했는데, 불빛은 세 남자였다. 장터목 방향으로 가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꾹 누르고 동행해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천천히 가는데 괜찮다면 따라와도 된다고 했다. 나에게는 차라리 잘된 일. 참...되돌아 생각하면 별 것 아닌데, 그때는 정말 기뻤다. 

그래서 밝은 헤드랜턴을 머리에 착용한 세 사람의 뒤를 따라 촛대봉 쪽으로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혼자 갈 때는 무서운 길이었는데, 사람들과 함께 가니까 큰 위안이 되고 불안감이 사라졌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최대한 없는 듯 폐 안끼치고 가려고 조용히 따라가는데, 세 사람중 제일 뒤에 가던 사람이 나보고 자기 앞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했다. 평소의 나같았으면 사양했을텐데, 거절 안하고 바로 사이에 꼈다. 왜냐면 내 손전등이 워낙 흐릿해서 길이 잘 안보여서였다. 중간에 끼니까 뒷사람의 불빛과 앞사람의 불빛만으로도 걷기에 큰 도움이 됐다. 

뒷사람은 내가 스틱없이 가는 것에 놀라면서 내게 자기 스틱 하나를 줬다. 처음엔 사양했는데, 너무 사양하면 안될 것 같아 받았다. 그런데 이쯤에서부터 뒷사람에게 고마워서 감동받는 일이 있었다. 바위 투성이인 컴컴한 산길을 가면서 자기 스틱 하나 빌려주는 마음도 고마운데, 내가 한 손에 손전등을 들고가는 것을 보고는 손전등을 넣고 가라고 했다. 어차피 자기가 뒤에서 좀 편하게 비춰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나 별볼일 없는 불빛이어도 손전등이 없으니 내 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다시 꺼내야 하긴 했지만. 한 손엔 스틱, 다른 한 손엔 손전등을 들고가는 생판 모르는 사람의 불편함을 헤아려 준 것이 고마웠다. 그리고 뒤에서 내가 배낭을 멘 모습을 봤는지, 촛대봉에서 쉴 때 배낭을 제대로 세팅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난 배낭이 몸에 붙는 게 싫어서 항상 좀 헐렁하게 하고 다니는데, 그 사람 말로는 배낭은 허리에 딱 붙게 고정을 해줘야 한단다. 그래서 한참을 허리끈, 어깨끈, 등을 조정해서 몸에 붙게 만들었더니 한결 편했다. 이걸 난생 처음 알게되다니! 알려준 뒷 사람에게 너무 고마웠다. 

세 사람은 내가 직접적으로 묻진 않았지만 한 사람은 가이드인것 같고, 두 사람은 동료인 느낌이었다. 나처럼 지리산 종주를 하고 있고, 천왕봉으로 가고 있는 중. 세 사람의 중간에 껴서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 어둠속에서 그들의 불빛에 의지해 걷는데, 이상하게 든든하고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생전 처음 만난데다가 불빛때문에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목소리만 아는 세 사람에게 우연치 않게 받게 된 안전한 기분이 없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순간들이 고맙고, 행복했다. 아마 그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나는 언제 행복했을까?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할 때 행복했고, 도움이 되는 좋은 사람이 될 때 행복했다. 도움을 주는 일은 행복했으나 도움을 받는 일은 참 어려웠다. 물론 나는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내가 필요도 없는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내게 뭔가를 요구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다지 친하지 않거나 신뢰가 쌓이지 않은 관계에서 도움을 받는 건 정말 두렵고 싫은 일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내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힌 사람도 내게 이유없는 친절을 베풀었었다. 그 사람은 내가 받지 않는다고 화를 내기도 했는데...나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이 주는 것들이 불편했다. 왜 불편했지? 그건 그가 주는 것들이 내가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받는 주제에 뭘 골라서 받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선물이나 도움은 작은 것이라도 상대를 사려깊게 관찰하고 그가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진짜 아닐까. 그 사람은 내가 뭐가 필요한 지 제대로 관찰은 못한 것 같다. 아니면 알았지만 주고 싶지는 않았는지도...하긴 나도 제대로 표현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상황이 너무 어지러웠고 복잡했다. 어쨌든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받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원한다고 말한 것은 받지 못했다. 

지리산에서 마지막 날 예기치 않게, 원한다고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들을 선물로 받은 기분이었다. 여러 번 지리산 종주를 했었는 듯한 선두의 가이드는 원래 세석에서 장터목까지의 트래킹 길이 정말 아름다운데 어두울 때 와서 하나도 못 보게 되는 것이 아쉽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다음에 낮에 또 세석까지 올라 가면 그만인 길이다. 새벽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든든하게 걸을 수 있는 지금이 나는 아무래도 제일 행복하고 좋았다.

장터목에 도착할 즈음하여 여명이 터오기 시작했다. 이젠 손전등이 없어도 되는 시간. 취사장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세 사람과 작별을 했다. 내가 성격이 좀더 살가웠으면 느꼈던 만큼 고마움을 표현했을텐데,..말은 잘 못하고 마음만 가득 담아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세 사람이 복받았으면 좋겠다. 장터목에서 천왕봉쪽으로 오르자 해가 벌써 떠오르기 시작했다. 천왕봉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거의 암벽타듯이 돌을 잡고 올라가다보니 천왕봉이었다. 

여기가 지리산 천왕봉이구나! 말로만 듣던. 여기에 오려고 3일을 꼬박 아픈 무릎을 끌고 걸어왔다. 살짝 눈물이 나올 것도 같았는데, 천왕봉에서 보이는 산들과 구름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흠뻑 땀에 젖은 열오른 머리와 몸을 식쳐주는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커다란 지리산을 봤다.

반야봉아 안녕, 노고단아 안녕, 구름아 안녕, 모두 좋은 아침을 맞았구나.

난 산 아래서 삶이 불완전하게만 느껴져서,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징징대고 있었는데, 여기와서 보니까 왜 그랬다 싶다. 그래서 산이 이렇게 큰가.

남들 다 찍는 인증샷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찍고 엄마, 친구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에게 보냈다. 사장님은 아무 생각없이 했겠지만, 기어서라도 올라가보라는 말에 오기로 오길 잘했다. 하면.. 정말 된다.

중산리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좀 짧은 칼바위 방향으로 내려왔다. 천왕봉에 올라갔다와서 마음이 풀려서 그런건지, 빗물에 젖은 돌이 미끄러워선지는 알 수 없지만 최대한 천천히 내려왔는데도 여러 번 길에서 넘어졌다. 그래서 산에서 내려와 살펴보니 양쪽 무릎이 바위에 긁혀 다 깨지고 왼쪽 손바닥에도 멍이 들었다. 그래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중산리 내려와서 마지막으로 찬물에 세수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났다. 왜 그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슬픈 건 아니었는데.

중산리 버스정류장까지는 무릎도 아프고 해서 택시를 타고 내려왔고, 거기서 원지행 버스를 타고 원지로 왔다. 중간에 버스에서 이상한 남자를 하나봤다. 그 사람은 계속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는데, 그 눈빛이 이상했다. 호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뭔가 독심술같은걸 하려는 듯한 눈빛? 내릴 때도 계속 나를 쳐다봐서 자는 척 했다. 그 다음부터는 계속 자면서 집에 왔다. 원지 시외버스 정류장에 모아온 쓰레기를 버리고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버스에서는 죽은 듯이 잠만 잤다. 구례갈 때도 그랬는데, 이번엔 버스에서 자는 잠이 최고로 깊고 편안했다.

블랙홀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떠난 길. 지리산에서 다 풀고 집에 왔다.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인디언 부족의 성인식이나 그런 것처럼, 지리산을 혼자 종주했다고 해서 내가 인격적으로 성장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가벼워져서 왔다.

모두는 행복해지길 원하고, 그 행복이 항상 같은 방향일 수는 없기에 상처도 주고, 상처도 입히지만 나는 나를 잘 보살피면 될 것이다. 내 무릎이 그래줬듯. 잘 쉬고 나면, 열심히 살고나면 알아서 잘 치료될 것이다.

지리산이 그렇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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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0일 토요일 


연하천 대피소는 최악이었다. 오후 9시에 소등을 했는데, 밤새도록 사람들이 왔다갔다했다. 간단한 목구조의 2층 침상은 아무래도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자는 걸 알면 살금살금 걸어야 하는 게 맞는데, 아무도 신경을 안쓰는 것 같았다.

몸은 피곤한데 소리때문에 1시간 30분 간격으로 깨니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새벽 3시쯤에는 정말 한마디 하려다 겨우 참았다.

그런데 참길 잘했다. 아침에 옆에서 왔다 갔다 하던 여자애들 얘기를 들으니 새벽에 별을 보고 싶어서 나갔었던 거였다.

대학 2학년쯤 되었을까? 친구들 셋이 모여 하는 지리산 종주는 오랜 추억이 되겠지.

그리고 그 나이에 보는 밤하늘에 가득한 별은 또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그러니 괜히 내가 화를 안내길 잘했다.

뭐든 이렇게 조금만 참고, 조금만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화를 낼 일도 없는데,

현실은 그러기가 참 힘들다. 

그리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보려면 상대의 진실을 알아야 하는데,

어른이 되고 사회 경험이 많을 수록 진실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견고한 '포커페이스'를 만들려면 그럴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지만...내가 너무 부정적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조금 더 현명하다면 사람들의 속뜻을 깊게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어리석어서 한치 앞밖에 못보면서 세상을 비난 할 것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다음엔 연하천대피소를 피하고 싶어졌다. 언제 다시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잠도 못자고, 화장실도 최악이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건 좋은데, 푸세식에서 일을 보는 건 너무 힘들었다.

사실 문 앞에만 가도 구역질이 나서 대피소의 화장실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먹고싶지 않아졌다.

아침에 벽소령 대피소 화장실을 갔는데, 여기 화장실은 수세식이었고 냄새가 안나서 정말 좋았다.

수세식 화장실이 이렇게 감사한 줄 초등학교 1학년 이후로 처음으로 느꼈다.

그러고보기 목욕 안한지 3일째다. 생각보다 견딜만 한데 이제 머리 묶은 건 풀지 못하겠다.

다행히 땀냄새는 그다지 심하지 않은 것 같다.

아침마다 찬물에 세수하는 것이 기분이 좋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아침을 건조 북어국블럭, 참치캔 하나, 콘 와플 9조각, 천하장사 소시지 3개로 먹고 벽소령으로 향했다.

뜨는 해를 보며 천천히 산길을 걸었다. 그래서인가 가다가 바위에 잔뜩 피어있는 석이버섯도 발견했다.

말로만 듣던 석이 버섯을 보고 만져보니 신기했다. 보드라웠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석이버섯이 자라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사람들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니까 석이버섯을 찾을 수 없었는지도.


어제 저녁엔 무릎이 너무 아팠는데 아침이 되니 또 괜찮아졌다. 잠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하지만 벽소령 지나서부터는 또 다시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점점 더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어제 주운 나무 지팡이도 부러졌다. 그런데 지팡이 없이 걸으니 무릎 통증이 덜해졌다. 맞지 않는 지팡이를 짚어서 그런걸까.

아픈 건 왼쪽 무릎인데 걷기도 너무 힘들고 그러니 짐이 점점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세석대피소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1시 30분 정도에 도착했는데, 멍때리다보니 3시 30분이 되어버렸다. 

대피소 캐노피 아래에는 테이블이 많아서 사람들이 잔뜩 모여 밥을 해먹고 있었다. 나도 뭘 좀 먹기는 해야겠고, 앉고는 싶고.. 해서 구석이 비어있는 듯한 테이블에 가서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아저씨 둘이 물을 끓이고 있었는데, 다행히 옆자리에 아무도 없다길래 합석했다.

그 사람들은 여럿이 팀으로 종주를 왔다는데, 자기 둘만 당일치기 종주를 하기로 했단다. 밤차를 타고 새벽에 노고단에 올라서 세석까지 오다니.. 대단하다. 

난 못할 것 같다. 하긴 하라면 하겠지만, 굳이 해야할 이유는 못느끼겠다.

살 날이 일주일밖에 안남았다면 하루정도 지리산 종주를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사람들이 버터를 발라 구운 토스트를 권하는데, 사양안하고 먹었다. 나도 너무 배가 고프기도 하고 빵이 먹고 싶었다.

평소같았으면 절대 사양했을텐데, 몸이 피곤하고 배고프니 사람이 좀 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세석까지 오는 막바지 길에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났다.

마음이 아프다고 지리산에서 씻지도 못하고, 아픈 무릎으로 바위같은 배낭을 매고 산길에서 이게 뭐하는 건가.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하고 몸도 힘들고 그래서 눈물이 났다.


뭐 어쨌든 이번에 지리산 종주를 하고나면 더이상 지리산 종주한 사람들의 경험이 궁금하지는 않겠지 싶었고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뭐든 한번 해보고나면 별거 아닌데, 나는 참 생각도 많고 겁도 많다.


노고단에서 연하천까지 걷는 어제의 길은 뭔가 희망적인 마음에 가득찼었는데, 오늘 세석까지 오는 길은 너무나 비관적인 마음이 가득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괜히 내 사생활이며 고민을 털어놓은 것도 너무 후회가 됐다. 

저급한 호기심에 진실할 필요는 없었는데... 엎질러진 물이다.

그래도 되지도 않는 작업을 붙잡고 책상에 앉아 있느니 산에 오는 게 낫긴하다.


산에서는 생각이 단순해진다.

산에서는 다음에 어떤 돌을 밟아야 넘어지지 않을지 순간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일이 전부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끊임없이 명상을 하게된다. 산에서는



5시쯤 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석평전에 고즈넉하게 내리는 비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었다.

하지만 몸도 너무 피곤하고 무릎도 아파서 내일 어떻게 해야할지 계속 고민이 되었다.

어차피 내 목표는 천왕봉을 정복하는 것도 아니고 천왕봉 일출을 보는 것도 아닌데

무리해서까지 천왕봉에 오를 필요가 있을까.

누워서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문자가 왔다. 기어서라도 올라가보란다.

그래서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냥 이번에 한번으로 다 올라가버리고 더이상 동경이나 호기심을 가지지 않아버리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상대가 그냥 던진 말을 나는 참 의미있게 해석을 했다.


내일 아침 5시쯤 떠나면 촛대봉에서 6시에 일출을 보고 천왕봉에 오른 다음 집으로 가면 얼추 시간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 힘든 산행길 내내 머리에 맴돌던 시가 있다.

여기에 적어놓는다.

-----

무화과 숲


-황 인찬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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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9일 금요일


예상은 깊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밤에 잠을 거의 설치다시피 제대로 자지 못했다.

6시에 입실시작하자마자 들어가서 짐 정리하고 한 8시부터 자리에 누웠다. 

오전 5시에 일어났으니 시간으로 치면 9시간을 잔건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오랜만에 꿈을 꿨는데 꿈속의 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꿈에서 다시 똑같은 자리에서 자고 있었다. 

실제로 내 주변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꿈에서는 내 옆 자리에 어떤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게 이불을 던지고 화를 냈다. 나는 그래서 그 사람에게 영어로 직접 이불을 가져가라고 하다가 잠이 깼다.

왜 갑자기 영어를 썼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른 꿈에서 이제 남이 된 사람도 보았다. 그 사람은 어떤 글을 읽고 있었다.

2시에 깨고 4시에 깨고... 계획대로 어쨌든 5시에 깼다. 


5시에 일어난 이유는 아침을 먹고 노고단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그동안은 노고단에 새벽에 올라갈 수 없었는데, 금년에 일시적으로 일출을 볼 수 있게 개방했다기에 한번 보고 싶었다.

해는 매일매일 어디서든 뜨지만, 게다가 아무 의미없이 보내는 해이지만

특별히 마음을 내어 보는 해는 소중하게 느껴진다. 매일을 그렇게 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울 뿐.


사람들도 다들 일찍 일어났다. 오늘 일출시간은 오전 6시 9분이다.

비누는 쓸 수 없다길래 순한 클렌저를 솜에 묻혀 얼굴을 닦은 후에 화장실 세면대에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새벽에 찬물로 세수를 하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선 화장실을 나와서 하늘을 봤는데, 어제 밤에 가득하던 구름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까만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아.. 나도 모르게 한참을 별을 봤다. 차가운 새벽바람이 물 묻은 얼굴을 스치는 느낌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새벽부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얼른 대피소로 들어가 짐을 챙겼다.


아침은 건조블럭 북어국, 참치캔 하나와 콘와플 7개를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햇반도 끓이고 그러던데, 별로 먹고 싶은 생각도 없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동안 무거운 마음에 밥을 거의 먹지 않았더니 위가 줄었나..? 아무튼 기운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괜찮았다.

그런데 쓰레기를 잘 챙긴다면서 정신없이 배낭을 매고 나오다가 어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준 빵과 함께 대피소에 놓고 와버렸다.

빵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지만 안먹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대피소에서 노고단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아직 어두웠다. 

새벽별을 보며 아무도 없는 노고단 길을 오르는 것은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멀리서 어슴푸레 밝아지는 하늘빛을 보는데 소름이 돋았다. 앞으로 가는 것이 아쉬워 서서는 둘러보고 또 다시 오르고 아무튼 지렁이속도로 올라갔다.

노고단 정상에서 해가 뜨는 걸 보려고 한참 기다렸다. 사실 정확히는 한참인지는 모르겠다.

9월 초이긴 해도 산 위는 정말 추웠다. 소프트쉘 하나 걸치고 가만히 서서 기다리려니, 손이 시려워서 마비가 오는 것 같았다.

그냥 내려가버릴까 말까 몇 번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오기로 버텼다. 

하늘에 구름이 약간 있어서 사람들이 오늘은 일출보기 힘들겠다고 한마디씩 하는데 해가 구름 위로 머리를 들이밀더니 순식간에 붉게 반짝였다.

손이 아픈 것도 잊고 떠오르는 해를 봤다. 

이래서 사람들이 일출을 보려고 산에도 오르고 넘치는 인파와 함께 바닷가를 찾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해를 매일 아침 보면서 하루를 맞으면 그 사람은 하루를 얼마나 소중하게 보낼 수 있을까.

하긴 매일 떠도 인식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 요즘의 한심한 내가 그렇듯.

붉은 해도 아름다웠지만, 새벽녘의 어슴푸레한 길이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이 가득 했던 순간이어서.


내려오는 길에 물매화를 봤다. 

물매화가 엄청 아름답다고 극찬을 해서 무슨 꽃인가 궁금했는데, 상상과는 다르게 갸냘프고 섬세해 보이는 꽃은 아니었다. 

사실 난 어떤 꽃이 다른 꽃보다 더 아름답다.. 그런 식으로 비교하는 사람은 잘 이해가 안갔는데,

막상 물매화 칭찬을 들었을 때는 반박을 못했다. 하긴 굳이 내 의견을 말한다고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겠지.

세상에 아름답지 않고 쓸모 없는 꽃이 있을까?

이유없이 피었다가 지는 꽃은 있을까?

치열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지 않는 꽃은 있을까?


노고단-임걸령까지의 길은 전에도 와봤기에 익숙했다. 

역시나 비밀의 숲길처럼 아늑하고 예뻤다. 특히 이른 아침에 걸으니까 사람도 없고 좋았다.

8월 중순에 왔을 때는 길에 온갖 야생화가 가득해서 화려했는데, 이젠 9월이라고 꽃이 그때처럼 다양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예뻤다.

이번엔 임걸령 샘물도 마셨다. 목이 마르지 않아서인지 아주 맛있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번 마셔봤다.


임걸령지나서부터는 배낭이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그래서 핑계김에 아주 천천히 걸었다.

배낭이 없었으면 성큼성큼 걸었을 길이 참 길었다. 

그래도 언제 또 올까 싶어서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들렀다 오기로 했다. 

와.. 그런데 노루목에서 반야봉 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멀리에서는 부드럽게만 보이던 능선이 가까이 가서 보니까 돌 투성이였다.

어깨에 짐이 없었으면 괜찮았을텐데, 한걸음 한걸음이 진심으로 천근같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올라갔다. '반야봉'이라고 써있는 돌 옆에 가자마자 바로 털썩 앉아서 오래 쉬었다.

멀리 노고단이 보였다. 

언제 저기까지 가나했는데, 무거워도 한걸음씩 걷다보니 반야봉도 와보는구나.

사는 것도 그냥 이렇게 순탄하기만 하면 좋을텐데...하긴 굳이 따져보면 난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래도 예기치 않은 흙구덩이같은 인간관계는 안맺고 싶다.

난 진실하지 않게 사람을 대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진실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서 나는 힘든 적이 많았다.

자신을 숨기는 것이 유연하게 인간관계를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사람을 만나야되는건지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건지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필요하지만, 대체 그 사회는 어떤 사회인걸까.

그 사회에 적응하면 나는 행복해질까?

그 사회인들이 내게 말하듯이?

그런 생각을 하다가 반야봉에서 내려왔다.


연하천 사거리까지 오는 길은 더 길게 느껴졌다.

작업을 오래 서서 하다보면 왼쪽 무릎이 아프곤 하는데, 산에서 무릎이 아픈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별로 쓰지도 않았는데, 너무 아팠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통증이 컸다. 짐은 무겁고.. 어떻게 연하천대피소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3시쯤 도착했는데 6시에 입실이랬다.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니!

천하장사 소세지 세 개를 먹으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그래서 탁자에 엎어져서 졸았다.

춥고 배고프고 졸립고. 다행히 5시에 일찍 입실을 시켜줬다. 


추워서 더운 물을 마시고 싶은데 버너가 없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떤 사람에게 처음으로 더운 물을 얻었다.

노고단에서 연하천까지 오는 길에 몇 번 만난사람같은데 얼굴은 잘 기억이 안났지만 어쨌든 고마웠다.

더운 물 한모금이 목을 타고 배로 흘러들어 가는데 행복했다.

물 한모금이 이렇게도 행복하게 만들 수가 있는 걸 오늘 오랜만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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