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6일-27일 토,일요일
어떤 모임에서 경상남도 양산에 있는 영축산에 올라간다고 해서 같이 합류하겠냐기에 간다고 했다. 아침에 KTX를 타고 울산에 가서 영축산을 등반한 다음 그 아래의 통도사에서 묵는 계획이다. 영축산은 부산에서 가까운, 그러니까 서울에서는 아주 먼 편에 속하는 곳에 있다. 그래서 가는 시간이 오래걸릴 줄 알았는데 기차를 타니까 두시간 반만에 울산에 도착했다. 빠른 시간에 반비례하여 많이 비싼 교통비는 약간 고민을 하게 했으나, 송광사, 해인사와 더불어 3대 사찰의 하나인 통도사에 방문하는 것도 매력적이고, 영남알프스의 끝자락인 영축산을 미리 답사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영축산에 오르면 신불산의 억새밭이 보인다고도 해서 기대가 많았다.
아침 7시 45분에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울산역에 도착하니 감사하게도 픽업을 오신 분들이 있었다. 모임의 한 분이 친한 분 덕이다. 울산의 날씨는 우중충했지만, 간만에 서울을 떠나니까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일정이 순간 바뀌어 산에는 올라가지 않고 통도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되었다. 아쉬웠지만 스님 및 여러 명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내게는 쉽지 않은 경험이니까 즐겨보기로 했다. 난생 처음 스님이 묵으시는 곳에서 차를 얻어마셨다. 스님의 방은 단촐하지만 아기자기한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다. 한쪽 벽면에는 일반 서적, 불교경전등이 빼곡하고, 반대벽면엔 작은 오디오가 있었다. 스님이 뇌과학에 관심이 있으신 듯 했다. 차는 그냥 녹차였는데, 사람들과 나눠 마시는 분위기가 좋았다.
차를 마시고 스님이 통도사 경내를 설명하며 알려주셨다. 절은 많이 컸다. 전에 절 그림을 그릴 때 내소사를 모델로 하고 해인사를 답사를 했었다. 그런데 통도사를 보니까 내가 상상한 절의 모습과 많이 비슷해서 신기했다. 스님이 절을 알려주시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말이다. 스님이 새롭게 해석을 해주셨다. 인자무적이라는 말은 본래 맹자에서 나온 말로(하지만 그 전 부터 있었던 말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그걸 더 깊게 보아야 한다고 하셨다. 즉. '어진 사람이 적이 없다'라고 단순하게 해석하기 보다는 '어진 사람은 적개심敵愾心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진 사람이라면 나와는 다른 것에 대한 인내심의 폭이 아주 넓어서 적개심을 가질 수가 없단다. 적개심을 가지지 않으면 싸울 일도 없고 그래서 결국은 적이 없어지게 되는 것. 들으면서 참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우주는 하나지만 인간 각각이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우주는 제각각이다. 그러니 내가 내 우주를 만든다고 봐야하는데, 난 참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았다. 세상에 왜 이해할 수 없어 갑갑하고 미운 것들이 있을까.. 요즘 많이 생각해보았는데, 그건 내가 내 자신을 그다지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였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나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데, 나는 나보다는 남을 의식했고, 그래서 남에게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고 그랬다.
스님에게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별로 눈에 띄고 싶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무거운 주제를 꺼내는 건 분위기에 맞지도 않는 것 같아서 그냥 내내 조용히 사람들이 하는 얘기만 들었다. 얼굴은 알아도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낼만 했다.
통도사는 새벽 3시 30분에 새벽예불을 시작한다고 해서 일찍부터 서둘러서 예불에 들어가봤다. 법당이 너무 커서 내가 이제까지 참석해본 아침 예불들에 비해서 스산한 느낌도 들었다. 그래도 그 새벽부터 난방도 되지 않은 추운 법당에서 신실하게 절을 하고 염불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신기했다. 다들 어떤 기도들을 하고 있을까. 항상 실수를 하고 늦게 깨닫는 나이지만 이렇더라도 꾸준히 깨달으며 어진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추운 법당에 앉아서 했다. 나를 참으로 사랑해주고 싶고 보듬어 안아주는 내가 되었으면, 그런 사랑만 알고, 만들고,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아침에 서울로 떠나기 전에 통도사 근처 암자들을 잠깐 산책했다. 안개가 가득해서인지 자꾸 물방울이 맺혀 눈썹이 젖었다. 어제 서울에는 첫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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