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일 목요일

다산의 사상을 읽다보면 이 조선시대에도 이런 깨어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놀랄 때가 많아서 한번은 꼭 다산초당에 가보고 싶었다. 다산은 강진으로 귀양을 가서 근 18년간 그 곳에서 수많은 글을 썼단다. 대체 어떤 곳이었길래 쉼없이 공부하고 생각하고 가르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려면 워낙에 오래 차를 타야해서 생각만 하고 있던 와중에 마침 광주에 갈 일이 있어서 일을 마치고 2박 3일을 남도 여행기간으로 잡았다.

광주에서 강진까지는 버스를 타고 한시간 반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침 광주 유스퀘어에서 버스를 타고 강진읍에 내려 미리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내려놓고 나왔다. 비수기인 겨울인데다 평일이라 그런지 숙소전체를 나혼자 썼다. 강진은 생각보다 많이 따뜻했다. 초록빛이 여기저기 가득한 것이 꼭 초봄같은 느낌이었다. 제일 먼저 목적지인 다산초당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농어촌 버스라고 하는데 버스가 셔틀버스처럼 작았다. 차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득해서 앞에 앉았다가 제일 뒷 구석으로 옮겼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각자 다른 동네 사람같은데 얼굴이 서로 익은지 서로 얘기를 나누며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옆에 새 달력을 하나 들은 할아버지가 나보고 볼 게 뭐 있어서 다산초당에 가냐고 물었다. '궁금해서요'

다산수련원에서 내려서 다산초당으로 좀 올라가야 한다. 초반에 그릇굽는 공방같은 건물이 있는데, 이제는 아무도 쓰지않고 비워져있는지 초벌만 구워진 그릇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이런데서 작업을 하면 어떨까. 길이 생각보다 짧았는데, 길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좋았다. 본래 사람들이 많은 걸 좋아하지도 않지만, 광주에서는 이래저래 많이 피곤했었는데, 그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물소리와 새소리가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었다. 12월에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면 마음이 언제나 편안해져서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다산 초당에는 건물 세 개가 있는데 정면의 건물은 본관? 그런 용도로 쓴 것 같고 왼쪽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곳 오른쪽 건물은 자신이 기거하던 곳같았다. 초당이라는 이름과 걸맞지 않게 기와가 올려져 있긴 했지만 단정한 모습만으로도 보기 좋았다. 혼자 마루에 앉아서 한참을 바람소리와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었다. 볕이 마루 가득히 들어 따뜻하니 세상에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다. 행복이라는 건 오래가지 않지만, 이렇게 순간순간 행복할 수 있으면 그게 평생 행복한 인생아닌가.


오른쪽 건물을 지나 오솔길을 오르니 백련사로 향하는 길이었다. 다산은 백련사의 스님(혜장)과도 친해서 서로 이 길을 통해 오가며 만나고 했단다. 비록 윗사람에게 미움을 받아 외지로 유배를 당하긴 했지만, 이토록 평화로운 곳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해하는 친구와 자신의 생각을 배우려는 제자들이 가득했다면 다산은 그렇게 불행한 사람은 아니었지 싶었다. 사람마다 외로움을 느끼는 때가 다르겠지만, 나는 언제 외로움을 느낄까 생각해보니, 아무도 내 생각이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때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끊임없이 친구를 찾아 헤매었으나, 그냥 친구를 만나면 만나는 거고 아니면 혼자 있자..라고 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겠다는 깨달음을 요즘 얻었다. 

 눈 녹아 비탈길은 미끄럽고
모래 둘러싸여 들집이 움푹하네.
얼굴에서 산중의 즐거움 가득하고,
세월따라 변하는 몸 신경 안쓴다네.
말세 인심 대개가 비루하고 야박한데
지금 이렇게 진실하고 솔직한 자도 있다네.

              혜장이 오다-다산-1807

오솔길 끝에 만난 백련사는 생각외로 황량한 느낌이었다. 절 건물 몇 채가 공사중이어서 그랬을까. 

백련사에서 내려와 큰길에 닿으면 강진읍으로 가는 버스도 있지만 시골이라 버스 시간 맞추기도 쉽지 않고 걸을만 할 거라는 생각에 백련사에서부터 강진읍까지 걸었다. 내려오는 길의 양 옆에는 꽃망울이 달려있는 동백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들에는 보리인지 뭔지 초록 풀들이 가득 자라고 있어서 꼭 봄같았다. 강진만 방파제 길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조금 춥긴했지만 아무도 없는 쭉 뻗은 길을 갯벌과 춤추는 갈대들과 함께 걸으니 행복했다. 가슴이 시원하고 따뜻한 바람으로 가득차게 천천히 걸으며 깊게 숨을 쉬었다.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악산 종주  (0) 2018.08.12
순천, 고흥, 강진  (0) 2018.01.17
통도사  (0) 2016.12.10
지리산 종주_04  (2) 2016.10.28
지리산 종주_03  (0) 2016.10.2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