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
-박서영
버스 정류소에 앉아 목련꽃 떨어지는 거 본다
정확한 노선을 따라가는 세월 보려고
정류소를 향해 가는 당신의 뒤를 미행한 적 있다
당신은 다리 위에 멈춰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검은 입안을 보여 주었다
무슨 말이든 해 보라고 가던 걸음 딱 멈추고
뜨거운 입천장을 보여 주는 슬픔
어쩌다 목련꽃 피는 밤에 우린 마주쳤을까
피려고 여기까지 온 목련은 지고
버스는 덜렁덜렁 떨어진 목련 꽃송이 태우고 간다
나는 하나 둘 셋 세월을 세다가 그만둔다
넷 다섯 여섯 방향을 세다가 그만둔다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색된 목련 꽃송이들이
툴툴거리며 버스를 타고 어딘가 가고 있다
일곱 여덟 나는 떠나는 이들의 뒤통수를 세다가 그만둔다
자꾸 흔들리고 자꾸 일렁거리는 것들은
자신들이 지독히 슬픈 세계라는 걸 알고 있을까
내 손을 뿌리치며 가는 당신을 따라간 적 있다
당신은 도망가다가 갑자기 길 위의 늙은 구두 수선공 앞에서
밑창 떨어진 구두를 벗어 수선을 맡겼다
가던 걸음 딱 멈추고 뜨거운 맨살을 보여 주던 구두
나는 당신 곁에 서서 행방이 묘연해진 기억들을 떠올렸다
사라지고 싶은 표정으로 아직 사라지지 않은
사랑이 수선되고 있다
여기저기 꿰매고 기워져서 행복도 불행도 아닌
이상한 이야기들이 헝겊 인형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입김으로 체온을 불어넣고 얼룩과 무늬를 그려 넣고
음과 양의 감정까지
통증을 알아 버린 인형이 목련나무 아래 버려져 있다
당신을 생각하면 힘들고 슬퍼요,
나무 뒤에 숨은 복화술사의 목소리가 휘파람 같다
정확한 버스 노선을 따라가는 당신 뒤에서
이해할 수 없는 꽃송이들, 눈송이들, 흰 주먹들이 떨어진다
어떻게 녹아내려야 하고 멈춰야 하고
사라져야 하는가
어떻게 이별하고 잊어야 하고 퇴장해야 하는지
계속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다